지난 1월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울산공항에서 생긴 일이다. 탑승장 출입구에서 신원확인을 마치고 막 들어서는데 내 신원을 확인한 항공사 여직원이 주변 동료들에게 놀라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할아버지, 1915년생이셔!”
침술원에서 진료를 할 때도, 업무상 해외를 나가도 모두 하나같이 내 건강의 비결을 묻곤 한다. 뭔가 특별한 약이라도 먹을까, 뭔가 색다른 운동비법이라도 있을까 하여 귀를 쫑긋 세우다가도 “다 뜸 덕입니다”하면 “그게 뭔데요”한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무극보양뜸을 뜬다. 내가 이렇게 젊은이 못지 않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무극보양뜸 덕분이다. 무극보양뜸은 8혈 12자리(여자는 13자리)에 쌀알 반알 크기의 뜸을 매일 한 자리에 3~5장씩 뜨는 뜸요법으로, 병이 있건 없건 누구에게나 유용하다. 무극보양뜸의 뜸자리는 사지의 곡지(曲池), 족삼리(足三里), 몸통 앞쪽의 중완(中脘), 기해(氣海), 관원(關元)(단, 여자는 중극(中極), 수도(水道)로 대치), 몸통 뒤쪽의 폐유(肺兪), 고황(膏肓) 그리고 정수리 부근의 백회(百會)로 이루어져 있다.
예로부터 뜸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잘 알리는 대표 뜸자리가 족삼리다. 몸 전체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자양강장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만평(萬平)일가는 3대에 걸쳐 여섯 사람이 100세에서 300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비결 역시 족삼리 뜸법이었다. 이외에도 감기, 급ㆍ만성 위염, 위경련, 고혈압, 동맥경화, 신장염, 빈혈, 관절염, 중풍, 언어장애, 신경쇠약 등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와 있다.
곡지는 특히 고혈압이나 중풍, 당뇨병 등 성인병에 좋다. 오래 하면 고혈압은 거의 정상이 되고 설사 정상 혈압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하여도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내려가고 혈관에 쌓인 지방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중풍예방이 자연히 된다고 하겠다. 성인병 중에서 특히 잘 낫지 않는다고 하는 당뇨병도 뜸을 열심히 계속한 사람 중에는 완치가 된 예도 볼 수 있다.
흔히 양기(陽氣)가 좋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양기란 기운을 만들어 내는 신진작용을 의미한다. 우리 몸에서 이러한 신진대사를 맡고 있는 기관이 바로 위(胃)이다. 침뜸의학에서 말하는 위는 오장육부의 하나로 음식물을 담아내고 그 대사물질을 전달하고 내보내는 대사작용을 담당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위 주머니의 가운데인 중완은 무극보양뜸의 주요혈이다. 각종 위장질환을 비롯하여 고혈압, 동맥경화, 부종, 당뇨병, 갑상선종, 관절염, 편두통, 신경쇠약, 중풍, 자궁후굴, 불감증, 임포텐스 등에 효과가 좋다.
기해는 글자 그대로 원기(元氣)의 바다로 관원과 함께 남자의 정력의 바다를 이루는 곳이다. 실제로 관원과 함께 뜨면 확실하게 좋은 것은 임상적으로 분명하다. 급성장염으로 설사가 심할 때 이 자리에 뜸을 하면 설사가 그치는데 배 꼽아래 모든 동통에 효과가 있다. 각종 장질환을 비롯하여 만성복막염, 신장질환, 신경쇠약, 임포텐스, 불감증, 자궁근종 등 그 적응증 역시 광범위하다. 남자는 정력이 좋아야 하고 여자는 자궁이 튼튼해야 한다. 관원은 일명 단전(丹田)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뜸을 하면 칠팔십 노인도 회춘된다고 하니 꺼져가는 선천의 기운 즉 생명의 뿌리인 정력을 다시 살리는 자리이다.
이 정력이라는 것은 꼭 색(色)에 쓰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에 쓰면 유명한 정치가가 될 것이고, 학문에 쓰면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이며, 장사에 쓰면 돈 잘 버는 부자가 될 것이고, 여색에 쓰면 오입쟁이가 되는 것으로 그 쓰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므로 좋은 일에 자신의 정력을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건강하고 활력적으로 살기 위해 정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의 경우 기해, 관원 대신 중극과 수도를 쓴다. 여성은 월경을 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물길인 수도(水道)를 잘 터주어야 건강하다. 인체 이뇨작용을 담당하고 있는 방광의 기운이 복부에 모이는 자리인 중극과 물길이란 의미인 수도는 그래서 여성에게 중요한 자리이다. 한편 고서에서 이르길 사람이 늙으면 제일 먼저 폐유자리 근처가 뻣뻣하고 가렵다고 한다. 찬바람이 불면 답답하기도 하여 신경통이 쉽게 생기는 곳으로 등 갈퀴로 긁기도 하고 두들기기도 하는 등 나이가 많아지면서 제일 먼저 노쇠함을 알리는 곳이다.
고황은 <의학입문>에 보면 백병(百病)을 맡고 있어 뜸을 백장에서 천장 정도 한 후 기해와 족삼리에 뜸을 하면 보양이 된다고 할 정도로 장수보건에 중요한 자리이다. 속칭 갈비씨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 소화불량이 있거나 잘 먹기는 하는데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은 이 자리에 뜸을 몇 달 해보면 쌀값 물어달라는 사람과 옷값 물어달라는 사람이 될 정도로 건강하여 진다.
백회는 백가지 맥이 모이는 자리로 두통, 건망증, 가슴 답답함과 아울러 심신이 흔들리고 힘이 빠지고 헛것이 보이는 신경쇠약증에도 좋다. 수험생에게는 일명 서울대 뜸자리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효과가 좋다.
필자는 늘 무극보양뜸은 병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에게나 좋다고 한다. 그러나 뜸[구(灸)]은 오랠 구(久) 밑에 불 화(火)를 붙여쓴 것처럼 오래도록 떠야 그 참 효과를 만날 수 있다. 큰 바다도 물방울이 모여서 바다가 되고 소의 느린 걸음도 천리 길을 간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욕심내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오래도록 뜨면 그것이 날마다 축적되어 언젠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필자는 온 인류가 다 같이 뜸을 하여 질병의 고통 없는 즐거운 인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정확한 무극보양뜸 자리는 뜸사랑 홈페이지(www.chimtm.net)나 무극보양뜸 공개강좌에서 상세히 알 수 있으며, 뜸사랑 봉사실에 문의하셔도 됩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를 뜸 구(灸)에 집 당(堂) 자를 써서 ‘구당(灸堂)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뜸을 뜨기 시작한 것은 11살 되면서부터이다. 선친께서 뜸뜨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자라왔고, 1943년부터 침구사 면허로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뜸을 한 지가 벌써 80년이 넘은 셈이다.
지금이야 경제적 환경이 좋아졌지만 예전만 해도 우리 집에 찾아오는 환자들 중 돈이 없어 충분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뜸자리를 잡아주고 집에서 스스로 뜨라고 했는데 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우리 집을‘뜸집’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나 또한 구당(灸堂)이 되었다.
나는 늘 뜸의 5가지 장점을 말한다.
첫째, 부작용이 없다. 옛날부터 뜸자리는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크게 뜨건 작게 뜨건, 고름이 생기건 안 생기건, 뜸자리는 뜬 만큼 딱 그 크기만큼만 자국이 남는다.
둘째, 다른 것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낫는다. 80년 동안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왔다. 예전이야 침뜸이 1차 진료기관이었고 급할 때는 응급실 역할을 했지만 지금이야 1차, 2차, 3차 다 거치고 마지막으로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내 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좀 더 일찍 알아서 뜸을 떴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며 한탄하곤 한다. 그간 다른 어떤 치료법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뜸 치료를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를 비롯하여 허리 디스크, 자궁근종, 불임, 갑상선질환, 폐암, 전립선암 등 그 치료 사례는 수없이 많다.
셋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뜸요법은 뜸자리만 잡아주면 3분이면 배워서 뜰 수 있다. 바쁜 생활 중에 굳이 침술원을 찾지 않아도 집에서 가족끼리 쉽게 떠줄 수 있으니 시간도 절약되고 가족간의 정도 돈독해지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넷째,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 꾸준히 떠주는 정성만 있으면 한 사람이 서너 달에 3000원 정도면 뜸 시술을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저렴한 치료법이 어디 있겠는가.
다섯째, 만인에게 필요하다. 내가 하는 뜸요법은 병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에게나 좋은 무극보양뜸을 기초로 한다.
그렇다면 무극보향뜸이란 무엇인가? 무극보양뜸은 8혈 12자리(여자는 13자리)에 매일 쌀알 반알 크기의 뜸을 뜨는 요법으로써 병이 있건 없건 누구에게나 유용하다. 나 또한 매일 무극보양뜸을 뜸으로써 94세인 지금도 20대 청년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뜸요법도 딱 하나 단점이 있다.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의사는 인술을 베푸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의료는 시장경제의 한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환자에게 아무리 유용한 치료법이라도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내지 못하면 의료시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되었다. 의료인의 목적은 환자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뜸은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병에 3년 묵은 쑥을 사용한다고 전하는 <맹자(孟子)>의 이루(離婁) 편이나 추운 곳에서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고 탈 난 데에 뜸을 뜬다고 쓴 황제내경 <소문(素問)>의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만 보더라도 뜸요법은 최소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뜸요법이 이렇게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뜸이 신통치 않았다면 구박 당하고 박해당하는 동안 그 맥이 이미 끊어졌을 터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신약, 신기술은 100년은 고사하고 10년을 넘기기 힘든 요즘, 뜸요법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세계 속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타버린 600년 문화유산 숭례문에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문화재 유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한민족의 얼과 정통성에 대한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문화유산의 범위는 비단 유형의 건축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판소리, 가곡, 단청, 소목장 등의 무형문화로 이어진다. 사람의 목숨은 복원할 수도 없고 바꿔 낄 수도 없이 소중한 것이고 예로부터 이를 다루어 온 한민족의 정통침뜸이야말로 마땅히 보전 발전되어야 할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의 유실을 애통해하는 시민들을 보아하니 수천 년의 정통침뜸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에 통한이 서린다. 미력하나마 나의 80년 임상경험을 살려 인류에게 꼭 필요한 정통침뜸을 알리는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김남수 뜸사랑 회장
1, 의사아들도 고치지 못하는 병.
M 병원의 특실 문을 열던 나는 병실 안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에 잠시 멈칫 했다.
“내 병 하나 못 고치는 너희가 무슨 의사냐!”
S 식품 김 회장이 이 병원의 부원장인 아들에게 소리치는 순간에 내가 나타난 것이었다. 더 듣지 않아도 무슨 연유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침뜸 때문에 아들과 아버지가, 아니 의사와 환자가 다투고 있음이 분명했다.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본 김 회장과 부인이 반색을 하자, 힐끗 옆눈질로 나를 확인한 부원장은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빠져나갔다. 김 회장은 나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의사가 뭡니까? 병 고치는 사람이 의사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의 과장급 이상 의사를 다 동원해도 열 하나 떨어뜨리지 못하는 겁니까?”
숨이 찬 모양인지 김 회장은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김 회장은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환자가 바라는 건 병 낫는 것이지, 박사 학위 가진 의사 만나 보자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 너희들한테 치료 안 받는다, 이제 침 치료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숨을 몰아쉬는 김 회장의 손을 살며시 잡고 나는 이제 됐다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흥분이 가라앉도록 가슴을 쓸어 주었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김 회장은 유난히 감기에 잘 걸렸다. 그리고 걸렸다 하면 아주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항상 그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김 회장 자신도 감기를 무서워하고 조심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최고(最古) 의술에 기대를 걸면서
김 회장은 전에도 가끔 나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그 때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 했었다. 방안에서 침을 놓고 뜸을 떠주고 나면, 뜸쑥 탄 냄새와 뜸에 불을 붙이는 향내가 방안에 가득해진다. 그러면 김 회장 부인은 창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동원해 냄새를 없애려고 난리를 쳤다.
쑥내와 향내 때문에 침뜸 치료를 받은 사실을 의사인 아들이 알게 되면 이러쿵저러쿵 싫은 말을 할 테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말다툼을 하게 되니 그걸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던 김 회장이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에 누워서 대 놓고 침 치료를 받겠다고 했으니 아들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김 회장이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최신(最新) 의술로 못 고치고 있으니 이젠 최고(最古) 의술인 침뜸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 서 있는 부인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낫게 해 드릴게요.”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한약 짓는 한의사 노릇이나 침뜸 하는 침구사 노릇하기가 참 편해졌다. 내가 60여 년 전 개업을 했을 무렵만 해도 침구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끌려 다녀야 했다. 특히 급작스런 위경련이나 뉵혈(衄血) 같은 경우는 꼭 새벽녘에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느닷없이 불려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위급하고 위독한 응급환자는 병원 응급실로 가지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에게 오는 환자는 대부분 처음에는 약국에서 약 사먹다가 얼마 지나 병원에 가고 안 나으니 한약을 먹어보다가, 다시 병원에 갔다가 그래도 안 되니까 할 수 없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침 치료나 한 번 받아보자고 온다. 그러니 설사 내가 그들의 병을 못 고쳐준다 해도 나를 원망할 환자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잠시, 김 회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린 나는 기구맥(氣口脈)을 보기 위해 양 손목의 촌구(寸口)를 짚었다. 왼쪽 손목의 촌(寸)에서 심(心), 관(關)에서 간(肝), 척(尺)에서 신(腎)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의 촌에서 폐(肺), 관에서 비(脾), 척에서 명문(命門)의 상태를 살폈다. 김 회장은 오른쪽 촌에서 폐의 맥이 강하게 뜨고 양쪽 척의 맥은 약하게 잠겨 있었다.
“요사이 맘에 차지 않는 일이 있으신가 봐요?”
맥 잡은 손을 놓으면서 내가 묻자 김 회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맥을 짚으면 그런 것까지 나옵니까?”
“하하! 다리에 힘도 빠지셨지요?”
내 물음에 대답은 않고 김 회장과 부인은 서로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욕구 불만 같은 걸로 기(氣)가 발산될 수 없으면 가슴에 열기가 꽉 차 오르고 그러면 폐열(肺熱)이 되지요. 가뜩이나 감기로 폐에 열이 몰려 있던 참이었으니 열에 열을 더한 격이 되고 만 겁니다. 그러니 약이나 주사로 열을 아무리 내리려 해도 쉽게 열이 내리지 않는 거예요. 또 그 폐열 때문에 신수(腎水)가 건조해져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고요.”
그 동안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열이 내리지 않았던 이유가 마음 속 응어리 때문이라고 진단하자, 김 회장은 사실 답답한 일이 있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입원해 있는 동안 혹시 병원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고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병은 마음이 상해서 오는 병, 이른바 내상병(內傷病)이었다. 내상은 마음 속 에너지의 통로인 경락을 조절해 다스려야 한다. 내상으로 온 폐열이므로, 가장 먼저 폐의 경락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화혈(火穴)인 어제(漁際) 혈을 잡았다. 심이 지나치게 활동하면 폐가 피로하고 약해지므로 심의 경락인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통리(通里) 혈에 침을 놓아 마음의 분란으로 지나치게 활동하는 심장이 안정되도록 했다.
입법캠페인 “나에게는 마지막 남은 꿈이 하나 있다” 중국 의료계 고위 간부가 ‘한국의 화타’로 칭송한 94세 침구사 구당 김남수 선생에겐 마지막 남은 꿈이 하나 있습니다. 침뜸은 수천 년 동안 민간에서 활용되어 오면서 검증을 거듭하여 그 효과와 성능이 분명하게 입증된 의료기술입니다. 그러나 1962년 쿠데타 정권에 의해 갑자기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침뜸은 불법적인 의료행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침뜸은 북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서양에서 도리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고령화 사회의 가장 확실한 의료 대안으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우리의 전통의술 침뜸을 되살리는 것, 구당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
2, " 환자 스스로 치료하라 "
선거의 계절이다. 어깨띠를 두른 후보들이 거리에서 악수를 청한다. 아마도 그들은 하루에 수 천명의 사람들과 악수를 할 것이다. 나중에는 어깨가 뻐근해지고, 심한 경우 어깨를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악수 세례가 흘러넘치는 선거의 계절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소문이란 참 고약하다. 세상에,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한 지 7년이 넘었다면서 어떻게 침 한 번 맞고 병이 낫기를 바랄 수 있는가. 아무리 내 침술원을 사람들이 ‘침 한 번 집’이라고 부른다지만 말이다.
경기도 연천에서 소문 듣고 찾아 왔다는 이씨 할머니. 중년의 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선 이씨 할머니는 진료대에 걸터앉아 다짜고짜 “정말, 침 한 번 맞으면 싹 낫는 거죠?” 하고 다짐하듯 물었다. 나는 웃으며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 건지 봐야 알죠” 했다. 그랬더니 이씨 할머니는 “여기가 침 한 번 집으로 소문난 집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 해주시겠어요”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소문은 참 발도 넓다. 김영삼 대통령도 그 소문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나를 상도동 자택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악수를 하다 보니 어깨에 통증이 심해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긴 어깨 통증이라면 말 그대로 ‘침 한 번’으로 낫는다. 그때 나는 장침 하나를 아픈 어깨의 어깨마루 바깥쪽 우묵한 견우 혈에 깊게 놓아 곧바로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해 주었다. 그랬더니 김 전 대통령은 “정말, 침 한 번 집이네요”하고 악수를 건네며 크게 웃었다.
어깨와 팔이 아흔 견비통 때문에 나에게 온 사람들은 대개 침 맞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픈 게 낫는다. 나한테 왔을 때는 어깨와 팔아 아파서 겉옷도 제대로 벗지 못할 정도인데, 갈 때는 옷을 입으면서 자꾸 팔을 돌려보고 갑자기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나한테는 나았다는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는 침 한 번 맞고 나았다며 자랑하듯 소문을 낸다.
그와 같이 좋게 소문나는 것이야 반가운 일이다. 일부러 소문내려고 비싼 돈 들여 광고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소문이 소문을 낳고 또 소문을 낳다보면 오해를 낳게 되니 걱정이다. 침 한 번 집이라는 소문이 오해를 낳아 어떤 병이든 침 한 번으로 낫게 해 준다고 믿고 나에게 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경기도 연천에서 여기까지 물어물어 찾아왔을 이씨 할머니처럼.
나는 잠시 이씨 할머니를 쳐다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소문을 들먹이는 이씨 할머니는 이미 침 한 번으로 낫기를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할머니, 침이든 약이든 오래된 병이나 만성병은 오래 치료해야 낫는 거예요. 게다가 할머니가 앓고 있는 좌골신경통은 재발이 잘 돼 아주 괴로운 병이죠. 그래서 7년 넘게 병원도 다니고 한약도 많이 먹고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잖아요.”
나는 문진(問診)을 하면서 이씨 할머니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 아니 침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풀어주어야 했다.
“아무리 침이 신통하게 병을 잘 고친다고 해도, 침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겁니다. 물론 정말 신통할 정도로 침 한 번으로 치료되는 게 있죠. 실제로도 아주 많아요. 뜀뛰기를 하다가 비장근이 파열되는 경우가 그런데요. 그렇게 장딴지 근육에 탈이 나면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침으로는 한 번으로 씻은 듯이 낫지요.”
비장근이 파열되어 장딴지가 뚱뚱 부었을 때 의사는 오랫동안 물리치료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침으로 치료하면 아주 간단하다. 부어오른 장딴지를 만져보면 돌덩이같이 딱딱한데 이럴 때는 오그라진 힘줄이나 힘살을 펴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곤륜(崑崙) 혈과 위중(委中) 혈, 승산(承山) 혈에 침을 놓으면 된다.
곤륜은 바깥 복사뼈 뒤쪽과 아킬레스 건 사이에 있고, 위중은 오금 정 가운데에 있다. 승산은 종아리의 중앙부로 종아리에 힘을 주었을 때 ‘人’ 자 모양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가장 딱딱한 곳을 아시혈로 잡아 침을 놓는다. 이렇게 몇 군데만 침을 놓으면 잘 걷지도 못하고 온 사람이 똑바로 걸어 나간다. (다음호에 계속)
“하지만 오래된 병은 그렇지 않아요. 걸어간 만큼 다시 되돌아가야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하고 같은 이치예요. 침으로 손이나 발, 귀에 자극만 해도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무조건 믿어도 안 되지만 겨우 침 한두 번 맞아보고 효과가 없다고 그만 둬도 안 됩니다.
병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는 걸 아셔야 해요.” 설명을 한참 듣던 이씨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내 좌골신경통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치료를 하고 나서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나는 이씨 할머니를 엎드리게 하고 손으로 척추 양쪽을 눌러 내려갔다. 좌골신경통 환자의 척추 양쪽을 눌러 내려가다 보면, 압통을 크게 느끼는 부위가 있다. 바로 그곳이 병의 뿌리이다.
좌골신경통의 3가지 증상과 원인
보통 좌골신경통은 증상과 원인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통증이 발등의 새끼발가락에서 종아리 바깥쪽으로 나타나는 경우로 이때에는 제5 요추와 선골 사이에 이상이 있다. 둘째, 발등 엄지발가락 쪽에서 종아리 앞 바깥쪽으로 나타나는 형태인데 이 경우에는 제4 요추와 제5 요추 사이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종아리 앞 안쪽이 저리고 뻗치듯 아픈 것인데 이런 통증은 제3 요추와 제4 요추 사이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난다.
좌골신경통은 저절로 일어나는 법이 거의 없다. 좌골신경이 어떤 것으로부터 압박을 받거나 외상으로 상처를 입었을 때 일어난다. 척수염, 당뇨병, 빈혈, 임신, 난소종양, 자궁 및 그 주위염, 방광질환, 히스테리, 좌상, 감기, 과로, 치질, 상습변비, 알코올 중독 따위가 원인이 되어 생긴다. 특히 척추골 사이에 있는 판(板) 모양의 연골인 추간판(椎間板)이 틀어지거나 튀어나와 신경근을 압박하거나 유착되어 흔히 일어난다.
지금까지 환자들을 겪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좌골신경통은 요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요통이 여러 번 재발하다 좌골신경통이 되고 마는 것. 이것이 더 심해지면 요새 말하는 디스크가 된다.
“으아, 아파요!”
내가 제3 요추와 제4 요추 사이의 왼쪽을 누르자 이씨 할머니는 통증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제3 요추와 제4 요추 사이가 중심 치료점이다. 나는 먼저 이 중심 치료점에 침을 놓았다. 그리고 그 위아래 요추인 제2 요추와 제3 요추 사이, 제4 요추와 제5 요추 사이에도 침을 높고 세 곳에 모두 뜸을 떴다.
좌골신경통을 치료할 때, 동양의학이 치료원칙으로 삼고 있는 허실보사(虛實補瀉: 몸의 기가 모자라면 보태고 넘치면 깎는다)에만 매달려 경락치료만 해서는 완전히 낫지 않는다. 다리로 뻗은 좌골신경의 뿌리가 있는 요추의 이상 부위를 치료해야 완치가 된다. 이런 처방을 사람들은 비방(秘方)이라고 한다. 기가 막할 정도로 치료 효과가 있는데, 드러내보면 너무 간단해 남에게 알려줘도 잘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숨긴 꼴이 되어 버리고 결국 비방이 되어버린다.
“앗, 뜨거워….”
뜸봉이 타들어 갈 때마다 이씨 할머니는 몸을 조금씩 움칫거렸다.
“약간 뜨끔하죠. 조금 참으세요. 처음에 뜸하면 그런 거예요.”
나는 이씨 할머니를 다독거리며 다음 혈 자리를 잡았다. 우선 요추 뼈의 이상은 신(腎)이 허해 생겼으니, 신을 보하기 위해 신의 정기가 등허리에 모여 머무는 신유(腎兪) 혈을 잡았다. 그리고 신과 표리 관계인 방광(膀胱)의 경락 중에서, 허리와 다리에 기를 보강해주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혈인 엉덩이 부위의 포황(胞肓) 혈을 잡아 침을 놓았다.
“잘 참으셨어요.”
나는 이씨 할머니를 돌아눕게 했다. 그리고 다리의 삼리(三里), 팔의 곡지(曲池) 혈, 배의 중완(中脘) 혈에 침을 놓고 뜸을 떠, 몸 전체 기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자, 치료가 끝났어요. 일어나세요.”
눈을 감고 있던 이씨 할머니는 뜸이 따끔대는 걸 참느라 긴장했는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진료대에서 내려섰다. 몇 걸음 내딛다가 이씨 할머니는 눈을 껌벅거리며 허리를 틀어보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바닥에 여러 번 구르기도 했다. 옆에서 부축하려는 딸의 손을 마다하면서 이씨 할머니는 딸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으응…, 이상하네. 아픈 게 없어졌네. 이거 정말 안 아픈 거 맞나?”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무슨 소리냐 하는 표정으로 이씨 할머니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씨 할머니는 손으로 허리와 다리를 슬어 문지르며 계속 중얼거렸다.
“정말 괜히 소문이 난 게 아닌가 보네. 어쩌면 침 한 번에 아픈 게 씻은 듯이 없어져 그래. 응?”
집에서 꾸준히 뜸만 떠도 효과 커
눈맵시 고운 딸이 눈웃음을 보냈다. 조글조글 주름진 이씨 할머니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신기해할 만도 하다. 또 좋아할 만도 하다. 7년이나 신경통에 시달리다가 갑자가 통증이 느껴지지 않으니 마치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이씨 할머니를 불러 다시 진료대에 앉혔다. 그리고는 “실제로 통증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통증이 크다가 갑자기 가라앉아 작아졌기 때문에 잠시 사라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6개월은 계속 치료를 해야 완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걱정하는 낯빛이 되어버렸다.
“침술원에 오실 일이 걱정되세요? 괜찮아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그게 뭐냐 하면 집에서 뜸을 뜨는 겁니다. 오늘 뜸뜬 자리 있죠? 그 자리에 날마다 뜸을 뜨세요. 그러면 침술원에 매일 와서 치료받는 것하고 조금도 다를 게 없어요. 뜸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니까, 집에서 가족이 뜸을 떠주면 되는 겁니다.”
나는 뜸봉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그 뒤, 이씨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다섯 달쯤 지나고 나서였다. 반가움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
“침 한 번 집 선생님, 아니 뜸집 선생님, 너무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 말씀대로 매일매일 뜸떴더니 허리, 다리 아프던 것이 싹 없어졌어요.”
* 뜸 자리와 관련된 시각적인 자료는 구당 선생의 저서나 뜸사랑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ww.chimtm.net
3, 당뇨의 뿌리는 신장, 제 1혈은 신유에서....
뜸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서도 뜸을 떠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만큼 우리의 의료체계는 불합리하다. 현대의학을 선택하면 죽으나 사나 병원에 매달려야 하고 아니면 현대의학의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원에 갔다, 한의원에 갔다, 침술원에 갔다 하면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뇨병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현대의학인가, 첩약술인가, 침뜸술인가, 그것도 아니면 민간요법인가?
단언컨대 당뇨치료에는 침뜸이 최고의 효과를 낸다. 현대의학에서 하는 당뇨치료는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병이 심해 인슐린이 부족해지면 인슐린을 투여할 뿐이다. 한약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지만 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침뜸은 값싸고 편리하면서 부작용 없이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뜸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면서도 치료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는 치료법이다.
간유(肝兪)에도 침을 놓고 뜸떠야
당뇨 발생의 뿌리는 신(腎)이다. 당뇨는 비장(脾臟)에서 탈이 나 발생하지만 더 근본은 신장의 탈이기 때문이다. 혈액 속 당분의 농도를 조절하는 부위는 비장에 있는 랑게르한스섬이다. 랑게르한스섬에 문제가 생기면 인슐린 분비에도 이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혈액 속의 당분이 정상적으로 조절되지 못하고 급기야 당뇨로 이어지게 된다.
침뜸의학에서 당뇨병의 원인을 신(腎)에서 찾는 이유는 신의 양기(陽氣)로부터 따뜻한 기운을 받아야 비(脾)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할 수 있으며 신의 음액(陰液)이 충실해야 폐가 마르지 않고 부드럽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장의 배설 기능은 진액(津液)을 폐로 보내는 비의 기능과 비가 보내 진액을 온몸으로 퍼뜨리는 폐의 기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치료의 제1혈은 신유(腎兪)이다. 등허리에 있는 신유는 신의 기가 흘러드는 자리다.
신은 간(肝)에 이상이 오면 탈이 나므로 간의 기가 흘러드는 간유(肝兪)에도 침을 놓고 뜸을 떠 간의 기능을 다스린다. 그 다음, 폐와 비를 위해 등에서 폐의 기가 흘러드는 폐유(肺兪), 비의 기가 흘러드는 비유(脾兪)에 침을 놓고 뜸을 뜬다. 윗배에 심(心)의 기가 모이는 거궐(巨闕)로 심을 도와주면 오장을 모두 다스린 것이 되므로 치료와 합병증 예방이 동시에 해결된다.
단, 간유와 비유는 한쪽 혈씩 어긋나게 잡아 음양의 균형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남자는 왼쪽이 음, 여자는 오른쪽이 양이 허해지기 쉬우므로 남자는 왼쪽 간유, 오른쪽 비유에, 여자는 오른쪽 간유, 왼쪽 비유에 뜸을 뜬다. 이와 동시에 뜸을 뜬 자리와 반대되는 간유와 비유에는 침을 놓아 균형을 맞춘다.
또한 좌기문(左期門)과 그 아래 안쪽에 있는 좌양문(左梁門)으로 비장을 다스린다. 양쪽 다리의 족삼리(足三里), 양쪽 팔의 곡지(曲池), 배의 중완(中脘)에 뜸을 떠 몸 전체 기혈(氣血)의 균형을 잡고 배꼽 아래 기해(氣海), 원기가 모이는 관원(關元)에 뜸을 떠 몸의 원기를 북돋운다. 그리고 중완에는 침을 놓는다.
당뇨는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배설한다 하여 삼다병(三多病)이라고도 한다. 그 중 당뇨로 갈증이 심할 때는 발 안쪽 복사뼈 뒤에 있는 태계(太谿)나 대계 바로 아래 수천(水泉)은 신의 기가 모이고 물이 깊은 샘이니 갈증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당뇨로 인한 음부소양증은 찬물로 씻어내면 증상이 가볍게 해결된다.
당뇨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뇨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당뇨합병증 때문이다. 열량을 생산하는 3대 영양소인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중 탄수화물에 해당하는 당이 빠지면서 인체는 저항력이 뚝 떨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병이 침범하면 물리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균이나 질병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저항력 저하가 문제인 것이다.
Y 회장의 탄식 “모르면 고생이지”
며칠이 지난 뒤 나는 S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부인을 일단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치료해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병원을 등지고 침뜸에 전적으로 의지하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며칠 동안이었지만 치료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내가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마침 P그룹의 Y회장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S씨와 친분이 두터운 Y회장은 S씨 부인의 치료를 부탁한 장본인이었다. Y회장은 자초지종을 전해주자 혀를 찼다.
Y회장도 당뇨로 고생을 많이 했고 세계의 유명하다는 병원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애를 썼었다. 한 병원에서는 주사를 맞다 쇼크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병원에 다니기를 그만 두고 나에게 치료받기 시작하였고 여섯 달 만에 당뇨가 완치되었다.
그는 “뜸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이다. 종기가 나도, 감기가 와도, 숙취가 있어도 뜸을 뜨러 온다. 잘 알고 지내는 S씨 부인의 와병 소식에 당연히 침뜸을 권했을 것이고 뜸 뜬지 사흘 만에 부풀었던 배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에 기뻐했을 터였다. 그런데 뜸 치료를 미루겠다고 했으니 Y회장은 답답해서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르면 고생이지, 고생이야. 뜸이면 되는데, 뜸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을…. 그것, 참! 허허!”